대종사 정무 큰스님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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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 이정무 큰스님께 올리는 편지

2011-09-18

관리자

법장심 법사 합장


스님 전에 올립니다.

산하 대지에 온통 푸른 녹색의 향연이 펼쳐져있고 바람소리 새소리 온갖 소음까지도 향기로운 꽃향기 내음과 함께 대자연의 오케스트라가 연출되고 있는 초여름의 광경입니다.
항상 위풍당당하시고 서릿발같이 엄격하셨던 큰스님의 모습만 기억하고 싶지만 갑자기 쇠약해져 가시는 큰스님의 법체를 보면서 인생무상을 실감하게 됩니다.
반세기를 중생제도를 위해 힘쓰시고 고뇌하시며 "孝"사상을 강조하시면서 원력을 펼쳐주시고 모든 불자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방법과 인간성 회복의 필요성과 화합하고 살아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귀가 아프도록 일러주셨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자세하게 누구나 듣고 읽으면 다 이해할 수 있도록 향상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늘 발전된 미래를 위해 해박하신 경험과 체험을 통하여 저희 불자들을 깨어있는 불자로 안내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특히 수련대회를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최초로 설립하시고 각계각층을 수련회를 통해서 불자의 자부심과 많은 가르침으로 깨어나게 해주셨고 발우공양의 기회도 갖도록 해주신 자애로운 큰스님 덕화의 불자 모두가 감응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련대회 참가자에게 각별하신 대우를 해주시고 인정해주셨지요.
우리나라 종단에 법회를 창설하신 백용성 스님 그리고 찬불가를 최초로 만드신 정운문 스님과 신도 수련회를 창립하신 큰스님께서는 역사에 길이 크신 업적이 평가받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템플스테이 창시자이신 큰스님께서 권장하셨던 수련대회를 그때마다 게으른 탓에 핑계와 미루기로 횟수를 늘리지 못한 것이 저희들에게 큰 후회와 인생에 오점으로 남게 됩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실 줄만 알고 큰 스님 뜻에 따르지 못함이 죄송할 뿐입니다.
이제 큰스님을 신봉하는 모든 불자들에 한결같은 바람은 하루속히 어서 건재하신 옥체를 되찾으시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가람 불사와 부처님 시봉 그리고 신도 교화를 위하여 큰스님께서는 역사를 일구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용주사와 석남사, 그리고 영월암에 사적비는 어떤 스님보다도 더 크게 확대되어 평가 될 것입니다.
일생을 부처님과 같이 살아오시고 또 부처님과 불자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셨기에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저희 불자들을 위해서 법답고 거룩하게 살아오신 길을 더욱 오래 이어주시고 연결해 주시기 위해서 빨리 건강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큰스님의 육신이시지만 저희 불자들을 위해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의지처가 되기 위해서는 큰스님의 건강하신 법체의 모습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친견하기 어렵고 만나 뵙기 힘든 멀고 높은 곳에 계신 어른스님이 아니시고 언제나 가깝고 낮은 곳에서 저희 불자들의 건강 그리고 행복하고 깨어있는 불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시고 힘쓰셨습니다.
언제나 평정심을 잃지 않으시고 평등법으로 검약과 친환경 생활을 몸소 실천하신 큰스님 건강하신 모습 오래 오래 뵙고 싶습니다.
부디 원하옵건대 병원에 계시면서 건강 되찾으시고 완쾌되셔서 빠른 회복으로 퇴원하실 날만 합장 발원 올립니다.
그리고 덕운 스님의 지극 정성의 간병과 진정한 효심을 헤아리시고 속히 건강 회복하시기를 간곡하게 청하옵니다.



충남대학교 법학과 교수 한 복룡 합장


스님의 제 75회 생신과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5년 전인 2000년(5월말로 기억됩니다.) 고희 기념 법회 행사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 저는 스님과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고 하였습니다.

약 20년 전인 1981년, 제가 수원에 있는 세무대학 불교 학생회(세불회) 지도교수를 맡고 있을 때, 용주사 주지 스님이셨던 큰스님께서 지도 법사를 기꺼이 맡아 저희들을 열심히 지도해 주셨습니다. 재무부 국세심판원 사무관으로 있는 제 1기생 황신권 회장은 초대 회장으로서 근처에 있는 경찰대학 불교학생회 박재진 회장(현재 충남 경찰청 수사과장)과 더불어 스님으로부터 열심히 불교 공부를 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지금까지 스님이 주석하시는 절마다(신륵사, 영월암, 청룡사 등) 찾아다니며 열심히 신행을 하고 있습니다.

큰스님의 큰 포교 원력 덕에 저도 불교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게 되었고, 세무대학 교수 시절에는 출가할 마음까지 낼 정도로 불교에 심취하였습니다. 그 후 충남대학교에 부임해서도 교수불자회(대원회)를 창립하는데 앞장섰고, 스님께서 그 첫 번째 초청 법사로서 법문을 해 주시는 인연을 맺어 주셨습니다.

스님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은 설악산 봉정암 성지순례, 치악산 종주산행, 지리산 법계사 쌍계사 종주산행과 같이 山과 절을 연결하는 성지순례를 통하여 맺어졌고, 저도 그 인연으로 백두대간 종주까지 하고 백두대간 보존법을 제창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재작년의 봉정암 성지순례에서는 여전히 평지같이 산을 오르시는 모습을 확인하고 감개무량 하였습니다.

스님을 따르는 신자님들 가운데에는 저보다도 훨씬 오랜 세월 함께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저보다 스님을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정광주 한국 요가 원장 합장


2005년 참여불교 봄 호에는 '선 지식을 찾아서'라는 기획 란에서 '안성 석남사의 정무 노스님을 만나다' 라는 제목으로 김재일 조계종 환경위원께서 끈 글이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스님을 잘 소개하고 있듯이 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바른 이치를 가르치고 바른 행을 보여주시는 스승님입니다.

구체적으로 애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겠습니다만 스님께서는 항상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스님은 수행자의 생활이 편하면 편할수록 수행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해 오셨습니다. 5년 전 석남사에 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의 석남사는 수행사찰의 면모를 갖춘 훌륭한 도량이 되었습니다. 용주사나 여주 신륵사, 안성 청룡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스님께서 주석하신 도량은 언제나 면모를 일신하여 전통사찰로서, 수행도량으로서 면모와 품위를 갖추어 가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일은 전두지휘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는 저 분이 바로 원효대사께서 환생하신 분이 아니신가 여러 번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충남대학교 법대 학장으로 재직할 때는, 스님을 본보기로 하여 학장직을 수행하려고 노력한 것도 바로 스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세식을 마다하고 전통 해우소를 세우시는가 하면 용주사를 효심의 본찰로 일으켜 세우시고 부모의 은혜를 근본으로 천지만물의 은혜를 깨닫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주는 한 집안 / 중생은 한 몸 / 서로 원망 말고 / 은혜만 갚아라

이 절의 요사채 주련에 쓰인 그대로입니다. 스님께서 계속 건강하게 사셔서 한국불교의 발전은 물론 더 많은 중생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자비심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5. 6. 5



큰스님 전상서


큰스님!
갑신년 한 해가 저물어가니 지나간 시간이 활동사진처럼 지나갑니다.
특히 제가 큰스님을 뵙게 된 것은, 제 인생에 큰 변화인 불자의 길로 접어들게 하였던 계기가 떠올라 펜을 들었습니다.

큰스님!
날씨가 아무리 포근하여도 겨울은 겨울이라 갑자기 추워지니 걱정이 됩니다. 언제나 큰스님께서 오래오래 이 세상에 머무시어 뭇 어리석은 중생들을 제도하여 주시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큰스님!
큰스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른 지가 어언 20년이 지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시간이 유수와도 같이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제가 큰스님을 처음 친견할 당시는 오로지 은행원의 입장에서 예금 유치를 위한 목적으로 봉은사에 다닐 때였습니다. 그때 아주 우연한 기회에 큰스님의 부모은중경 법문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법문으로 저는 불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접었으며,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홀로 계신 어머님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도는 것을 법회장에서는 꾹 참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늘 바쁘다며 자주 어머님을 찾아뵙지 못하였는데, 바쁜 것이 핑계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러한 계기로 저 자신이 불자라는 긍지를 갖게 된 것에 대해 항상 감사드리고, 그 이후 큰스님을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그토록 소중하던 어머님이 저의 하나뿐인 동생을 위하여 저도 모르게 전 재산인 집 한 채를 팔아 동생에게 주시고 맨몸으로 그것도 중풍으로 쓰러져 저에게 오셨는데, 저는 기쁜 마음으로 어머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어머님 병 수발을 손수 들게 되었어도 저는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는데, 저의 이런 마음은 오직 큰스님 부모은중경 법문 덕분으로 생각됩니다.




불제자 한 우진(상연) 합장


큰스님!
저는 늘 어머님이 오래 장수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제 간호의 정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좀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죄인 같은 마음이 들어 매일 새벽마다 봉은사 법당에 나가 기도하고 참회하고, 지장전에 참배하며 부디 어머님, 아버님의 왕생극락을 간절히 빌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켜봐주시고 아껴주시는 큰스님의 은혜는 이 세상 모두 변한다 하여도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제 주변에 아직도 불교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저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화되어 스스로 발심하여 불자가 되도록, 지장보살의 길을 걷고자 다짐하였습니다.

큰스님!
갑신년 한 해에는 자주 뵙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내년 을유년에는 보다 성숙한 불자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큰스님 법체 만강하시어 보다 많은 사람이 부모은중경 법문을 듣고 진실로 인간이 동물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발원하며 두서없는 펜을 놓겠습니다.

불기 2548년 12월 20일(음력 동짓달 9일)




정광주 요가 원장의 말


스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아주 조금 스님의 가르침에 눈을 떠가며 하루하루가 마음 편하고 행복합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 왔지만 스님의 가르침으로 이렇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또 이익 되기를 늘 생각하고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삶의 은혜로운 빚을 갚는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언제나 스님이 계신 석남사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스님!
내년에는 더 성숙한 마음으로 스님께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2011년 5월 21일 (음력 4월 19일)
이 은 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