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정무 큰스님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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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이 사바세계에 원력의 빛으로 나투소서

2011-10-25

관리자

追 慕 辭

다시금 이 사바세계에 원력보살의 빛으로 나투소서
은사스님! 스님의 입적 부음(訃音)을 접하고 형언할 수 없는 잿빛 슬픔에 만감이 교차하는 착찹한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
메마른 학문지식에 식상하여 기댈 곳 없이 폐허의 늪에서 방황하던 청년 시절, 우연히 만난 스님의 법을 듣고 발심의 불길을 지펴 사제(師弟)지간의 불연을 맺은 것은 돌이켜보면 제 삶에 있어 일국의 왕이 되는 것보다 더 큰 복이자 행운이었습니다. 그것은 스님에게서 번뇌고통 강을 끊고 생사 고해 바다 건너 피안에 이르는 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출가 제자에게는 근면 검소를 기본으로 한 철저한 수행을, 재가불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대하는 어버이 마음으로 자상히 가르치면서 설법을 청하면 먼 길도 수고로움 마다 않으시고 흔쾌히 응해주시며 이시대 대중불교의 장(場)을 열어 그 초석을 다져놓으시어 현재의 템플스테이, 함께하는 민중불교, 불설 《부모은중경》을 근본으로 한 효사상 실천을 적극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 내외적으로 스님께서 하실 일이 많은데, 홀연이 스님은 육신의 낡은 옷을 벗고 우리곁을 떠나셨습니다. 외적으론 민족분단 문제에서부터 계층간 갈등 문제, 지도층의 민족문화 인식결여 문제, 환경 문제, 도덕성 해이 문제, 배금주의에 따른 가치관 부재 문제며 만연된 쾌락·향락주의 문제, 온갖 상업성 도박중독 문제, 흐트러진 승가의 기강 문제, 검소와 절제의 덕이 퇴색해버린 수행생활의 각성과 청정승가 위상 구현 등 살펴보면 어느 한 곳 스님의 행해(行解)며 덕화의 손길이 필요치 않은 곳이 없으니 스님이 가신 빈 자리가 크고 아쉬움 또한 더한 까닭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난 자 반드시 죽음을 맞는다. 이같은 불교의 생사관을 두고 풀이 하듯이 야스퍼스는 “죽음은 본래 왔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라 규명하였고 대문호 톨스토이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그 즉시 자기 무덤 저편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는 집행날짜 없는 사형수로서 삶을 산다”고 간파했으며 셰익스피어 역시 “인간의 일생은 무대 위의 한 판 연극으로 주연이든 조연이든 엑스트라든 각기 맡은 역할을 하고는 사라진다”면서 그 자신 죽음에 임해 “막을 내려라 연극은 끝났다”면서 희노애락에 부침하는 인간삶을 울고 웃는 한바탕 연극에 비유한 것은 무상 속에 유한 한 덧없는 인생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선 열반불사를 미리 예견하신듯 재가불자들에게는 두루 회향법문을 하시는가 하면, 상좌스님들을 모이게 하고서는 유지를 당부하시는 말씀 끝에 “나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니 그곳에서 만나자... 천도재일랑 안 지내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넉넉한 스승님의 살림살이일뿐, 불가의 관행이자 추모정서며 재가불자들의 바램이요, 제자된 도리로서 스승님의 상을 당해 차마 재를 안 올리는 것은 상도(喪道)가 아닌지라 현실적 정황을 고려해서 각령전(覺靈前)에 재를 올리오니 이점 너그러이 용서하시어 개의치 마시옵소서.
바라옵건대 스님 부디 정토세계(열반낙)에 오래 머무르지 마시고 생사윤회의 미망에 덮혀 있는 이곳 예토(사바세계)의 연민중생을 어여삐 여기시어 바른 길로 인도, 제도하시고자 다시금 보살의 몸을 받아나셔서 혼탁한 질곡의 시대를 밝히는 사표(師表)가 되어주시리라는 그 믿음이 있기에 애오라지 애틋한 그리움에 복받치는 비통함을 애써 안으로 곰삭임도 이때문입니다.
은사스님께서 육신의 낡은 옷 벗은지 엊그제만 같은데 어느새 49재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삼가 각령전에 한 줄기 香을 사룹니다.
侍奉 本原 삼가 焚香합니다.